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

농지법은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이 가능한 사례를 명시하고 있다. 지역축제장, 농축수산용 간이시설과 농수산물의 처리를 위한 간이시설을 설치하는 때 등이다. 이와 함께 가설건축물 숙소 건립 등도 지자체와의 ‘협의’를 통해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 대상이 될 수 있다. 농지법 규정에 의해서다. 다시 말해 가설건축물 숙소를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 허가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지자체가 이 제도를 잘 모르거나 알더라도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최근 ‘가설건축물 신고 관련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 협의 처리지침’을 지자체에 통보했다. 지자체에 타용도 일시사용을 통해 농지 위에 임시숙소 등 가설건축물을 축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가 증가한 데 따른 조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지침에 대해 “농가가 가설건축물 축조를 위해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을 요청할 때 지자체 담당부서가 적극적으로 협의하도록 기존 제도를 재확인해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제도에 따라 농가가 가설건축물 축조를 위한 농지 타용도 일시사용을 지자체에 신고하면, 지자체 건축부서는 신고 수리에 앞서 관계 법령 위반 여지가 있는지를 농지부서 등과 협의하게 된다. 농지부서가 농지 보전 필요성, 인근 농지 통작 등에 끼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건축부서가 그밖의 다른 조건도 충족한다고 판단하면 농지에 가설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다.

다만 이 제도로 모든 농가가 농지 위에 임시숙소 등을 설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제도는 열려 있지만 개별적인 인허가권은 지자체가 갖고 있다”면서 “허가를 위해 관련부서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농지 보전 필요성 등을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지침이 내려지면서 지자체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남 밀양시다. 10월22일 밀양시청에서는 건축과·허가과 담당자들과 밀양외국인고용주연합회(회장 윤상진) 회원 10여명이 머리를 맞대고 외국인 근로자 숙소 설치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최정훈 고용주연합회 총무는 “냉난방시설과 전기안전·소화기 등을 갖춘 숙소를 정부가 이제껏 인정해줬으면서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기존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 숙소는 허용하지 않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기존 숙소를 무조건 쓰지 말라 하지 말고,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열악한 주거시설은 시정조치를 내려 부적합한 시설을 제공한 농가는 고용허가를 제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윤상진 회장은 “현실적으로 농촌의 부족한 주거 인프라를 고려해 필수시설을 갖추고 주거기준에 부합하면 농지 위 가설건축물을 외국인 근로자 임시숙소로 사용하도록 허가해줘야 한다”며 “다만 고용이 끝나면 다시 농지로 원상복구 하고 계속 고용 땐 연장해주는 게 농가와 근로자 모두에게 유익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그동안 진전이 없던 외국인 근로자 숙소문제 해법은 최근 농식품부가 지자체에 지침을 내려주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밀양시는 고용주연합회 측과 협의를 거쳐 농지의 타용도 일시사용 허가 협의의 세부요건도 마련했다. 일시사용면적은 가설건축물 축조규모의 최대 3배까지 가능하며, 고용노동부 고시의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규정을 준수토록 했다. 허가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해당 시설물을 철거해 농지로 복구해야 하며 오폐수 발생에 따른 관련 처리시설(정화조)을 설치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고용허가 증명서, 복구계획서, 복구비용 명세서, 보증보험증권을 제출해야 한다.

윤 회장은 “시에 농업기반이 흔들리지 않고 농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임시숙소 설치 때 농지의 규모와 사용기간 등의 규정과 함께 이에 대해 악용하거나 선의의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보완장치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면서 “시에서 농촌과 농민이 처한 현실을 반영해 영농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줘 걱정을 덜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외국인 근로자의 숙소문제 해결에 지자체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김경채 전남 해남 황산농협 조합장은 “지역의 폐교나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외국인 근로자 숙소로 활용하는 방안 등 지자체가 외국인 근로자 숙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면서 “지자체가 나서면 단순히 숙소문제 해결에 그치지 않고 외국인 근로자 고용업무가 좀더 투명하게 진행되는 데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신문 2021.11.1. 양석훈, 밀양=노현숙, 해남=이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