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유래, 왜 6월 6일인가?

현충일이 6월 6일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는 자료가 없었다. 

인터넷 백과사전에서도 몇 가지 설을 제시하였을 뿐, 근거가 없었다. (누가, 언제, 어떻게, 왜)

결국 정부의 입장과 발표에 따를 수 밖에 없다. 

 

현충일 유래(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16.6.6. 문화체육관광부)

 

6월 6일이 현충일로 지정된 것은 망종(亡種)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망종은 벼와 같이 수염이 있는 곡식의 종자를 뿌리기에 적당한 때로 알려져 왔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보리를 수확하고 모내기를 시작하는 망종은 가장 좋은 날이기도 한데요. 국가를 지킨 영웅들에 대한 예를 갖추는 일은 예부터 망종에 진행되어왔습니다. 옛 기록을 보면, 고려 현종 때에는 조정에서 장병들의 뼈를 그들의 집으로 가져가서 제사 지내도록 했고, 조선시대 때는 6월 6일에 병사들의 유해를 매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충일이 6월인 또 하나의 이유는 6월 25일에 발발한 6·25전쟁에서 가장 많은 장병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충일이 지정되었던 1956년의 ‘망종’이 때마침 6월 6일이기도 했죠. 정부에서는 이를 고려해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게 되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역사
북한 인민군의 국지도발과 공비토벌작전으로 전사한 장병들을 서울 장충사에 안치했다. 전사자 수가 증가하여 1949년 육군묘지를 물색하였는데 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전사자 수가 증가하여 다시 대구와 경주 일대를 검토했는데 지역편중과 침수 우려로 중단되었다. 1952년부터 1953년까지 후보지를 선정하여 서울 동작동 부지를 국군묘지로 확정하고, 1954년 착공하여 3년간 묘역을 조성했다.
1955년 7월 15일 국군묘지관리소 발족, 1956년 4월 13일 군묘지령 제정

 

현충원 연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