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 대하여

 

이름.
한 세상 살다가 이름 하나
잠시 빌려쓴다.

 

하늘의 저 새는 이름이 있나?
글자로 된 이름이야 있을까마는
그렇다고 다른 새가 보기에 구분이 안갔겠나?

 

이름이 없이도 살 수 있겠지
이름이 있다해도 언제까지 있을까
장구한 세월앞에서 무엇이 남겠나
원시의 시간공간에서 이름없이 살다간 인류는 또 얼마이겠는가

 

그렇다고 누군가와 함께 사는데 정이 없었을까
누구로부터 사랑받고 기억되고
못지않게 살았겠지

 

이름이 있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이름 때문에 분해서 자살하고
이름 때문에 괴로워하고

이름이 없어도 나는 나인데
이름이 있어도 그사람이 이름처럼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까?
오늘도 내일도 내 이름은 그대로인데
내 안의 나는 그대로가 아닌데

갑자기 이름이 낯설어진다.
이름(부름)이 규정하는 삶에서 탈출하고 싶다.

2021년 3월 나무시장에서 사다 심은 노란장미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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