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은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산입니다.
산 전체는 충주시, 단양군, 경북 문경시에 걸쳐있으며, 우리나라 20개 국립공원 중 1984년 12월 31일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월악산이라는 명칭은 '산꼭대기 바위덩어리에 달이 걸리는 산'이라 하여 월악산이라고 합니다. 주봉우리가 신령스러운 봉우리라고 해서 영봉이라고 하는데 주봉이 영봉인 산은 백두산과 월악산 두 곳뿐이라고 합니다.
몽골 침입 당시 사람들이 피난하였는데, 몽골군이 쫒아오자 날씨가 갑자기 사나워져 몽골군은 월악산 신령이 노했다고 여기고 추적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월형산이라고 불렸고, 후백제 견훤이 궁궐을 지으려다 무산되어 와락산이라 했다고도 합니다. 신라 때에는 국가에서 제사를 지낸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산 자체가 여자 산신령이 머무는 곳이라 음기가 강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산의 지형도 여인의 모습이라고 해서 충주호 쪽에서 올려다보면 여인이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누워있는 모습이고, 제천 덕산 쪽에서 보면 영락없는 여인의 젖가슴이라고 합니다. 덕주사에는 남근석이 3개나 서 있고, 그 주위에 남근석이 종종 보이는데 이것은 산의 강한 음기를 누르려는 민간신앙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월악산국립공원사무소를 지나 덕주사 입구 월악산장(식당) 차량을 주차하고
걸어서 덕주사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입구에는 월악산국립공원 안내도와 덕주사 자연관찰로 표지판이 있습니다.
현위치(덕주사 입구)는 월악산 국립공원사무소를 지나 야영장에서 덕주사 방향으로 차량으로 2~3분 올라오면 도착합니다. 주봉인 영봉과 중봉은 충주호 방향인 북쪽에 위치해 있어 산에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은 아닙니다.
덕주사 자연관찰로
덕주사 자연관찰로는 월악산 영봉을 가는 가장 대표적인 탐방로 입구이면서 대표사찰인 덕주사로 가는 문입니다. 덕주사는 덕주공주의 전선을 가지고 있는 길입니다. 자연관찰로는 1. 자연의 소중함을 전하고 2. 자연의 월악산과 세월을 보내는 조화를 보여주고 3. 사람과 자연이 함께 만든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3개의 주제를 보여줍니다.
전체는 1구간, 2구간, 3구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올라가다 보면 그냥 하나의 길입니다. 덕주사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리는데 얼마나 머무르고 숲을 관찰하느냐에 따라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맨 먼저 보이는 곳은 수경대입니다.
수경대는 삼국사기에서 "국가에서 제사하는 것에 대하여 대사인 삼산과 중사인 오악에 이어 소사를 올리는 산으로 금강산, 설악산 등과 함께 월형산이 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보아 월악산이 신라 때의 월형산으로 수경대는 신라시대부터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제사를 지대던 곳으로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자연의 소(연못)를 만들어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른다.
영봉은 월악산의 주봉으로 험준하고 가파르며 높이 15m, 둘레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신령스러운 봉우리라 하여 영봉, 또는 큰 스님이 나온 혹은 나올 곳이라 하여 국사봉이라 부르며 옛날 나라의 중요한 제사인 소사를 지내던 산이기도 합니다.
수경대라는 명칭에 걸맞게 물이 정말 깨끗합니다.
바위와 하나가 된 쪽동백나무
바위와 나무는 서러 가까이 있지만 바위는 무생물, 나무는 생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둘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인 듯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바위의 무게를 작은 나무 하나가 어찌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나무 입장에서 보면 수십 년 세월을 바위와 함께 살고 있어 오히려 서로 한 몸인 듯이 상대방을 감싸주며 끌어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표지판 주변에 사진과 같은 느티나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월악산국립공원 및 주변은 고생대 석회규산암, 중생대 운모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반도 옥천구조운동(NNE)의 특징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지질학습장의 역할을 한다. 월악산국립공원의 지질 특성을 관찰 할 수 있는 지질명소는 북바위산 단애, 구담봉 토르, 하설산 애추 등이 있다.
월악산 일대의 지형은 주봉인 영봉을 중심으로 만수봉과 '깨달음을 얻는데는 나름대로 길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뜻의 도락산과 바위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모습처럼 보이는 제비봉 등 수려한 명산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걷다가 문득 돌로 쌓은 성이 보인다.
길 양쪽에는 성벽이 있고, 길 옆에는 성문이 있다.
이 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각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산성이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울러 싼 상성(내성으로 제1외곽), 상/하덕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과, 그 외곽으로 하성(제3곽)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 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매우 큰 규모의 석성이다.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시 월악대왕의 가호와 월악신사 등과 관련한 항몽의 유적지이기도 하며,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 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 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사적이다. 최근에 남문의 문루를 복원하였으며, 성벽도 일부 보수하고 있다.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가 세운 절이라고 전해지는 월악산 덕주사의 동쪽 암벽에 새겨진 불상입니다.
거대한 화강암벽의 남쪽면에 조각한 불상은 전체 높이가 13m나 되는데, 얼굴 부분은 도드라지게 튀어나오게 조각하였고 신체는 선으로만 새겼습니다. 새긴 바위에는 목저전실을 만들기 위한 구멍이 남아 있으며, 민머리 위에는 반원형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솟아 있으며, 살찐 얼굴에는 눈, 코, 턱 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얼굴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고려 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으로, 목에 있어야 할 3줄의 삼도는 가슴 위에 선으로 조각하였습니다. 선으로 조각한 살찐 신체는 조형적 특징이 무시된 채 기이함을 보이며,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축 늘어져 힘이 없고 선으로 된 옷 주름 역시 생동감이 떨어지는 형태입니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엄지와 가운뎃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손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좌우로 벌린 발은 지나치게 크고 발가락도 굵고 길게 표현되었으며 양발 아래에는 연꽃잎을 새겨 대좌로 삼았습니다.(여래 입상에 대한 설명을 누가 작성했는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양과 예술성을 바라보지 않고 조형적 특징이 무시되었다는 둥, 생동감이 떨어지는 형태라는 둥 동의하기 어려운 표현이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표지판을 지나, 좁은 주차장 너머에 덕주사 대웅전이 보입니다. (아마 공사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덕주사에서 계곡쪽에 표지석과 등산 안내도가 있습니다.
덕주사에서 영봉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는 설명과 함께 경사도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영봉까지는 올라가기 어려워, 마애불까지 오르려고 합니다. 시간은 50분 걸린다 하니 별도 등산채비 없이 운동화만 신은 채 올라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경사도 18.6%인데 실제로 올라가 보니, 돌계단이 많아서 서둘러가면 너무 힘듭니다. 천천히 주변 경치를 보면서 오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약간의 음료와 간식도 있으면 가져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계곡물이 시원하게 흐릅니다. 계곡이 깊어 등산로는 이끼로 덮여 있습니다.
15분쯤 오르다보면 석축 산성이 나타납니다.
월악산 중턱 "마애불"엔 덕주공주가 오빠인 마의태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 경순왕을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담겨있다.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은 신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병사를 양성하고자 금강산으로 길을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에 이르어, 마의태자의 꿈속에서 관세음보살이 말하기를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에 이르는 큰 터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 불사를 하고 석불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조성하여 만백성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잊지 말라"라고 하였다. 일행은 그 장소를 찾아 석불 입상을 세우고 북두칠성의 별빛이 한껏 비추는 최고봉 아래에 마애불을 조각하며 8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으니 그곳이 바로 덕주사 마애불이다.
실제로 바라보니,
참 잘 새겼다는 느낌이 듭니다. 규모도 그렇지만, 온화한 모습입니다. 국권회복을 다짐한다는 와신상담의 느낌이라고 하기에는 평화스러워 자비를 베풀고 극락을 꿈꾸는 듯합니다. 아마 덕주공주 자신의 모습을 닮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의 조각과 비교하면 비례가 맞지 않고 투박하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뜻이 담겨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음식은 자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쓴 나물이 입맛을 돋구어주었고, 배추 전에 막걸리 한 잔이 어울렸습니다.
월악산은 봄에는 다양한 봄꽃과 함께하는 산행, 여름에는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수림을 즐기는 계곡 산행, 가을에는 충주호와 연계한 단풍 및 호반 산행, 겨울에는 설경 산행으로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