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음식을 과하게 먹어 후회하는 사람이 많다.
후회는 문제의식을 갖고 새롭게 깨닫고 건강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좋은 것이다.
과식을 책망하며, 마음을 다잡는 것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소식은 건강에 좋다.
영양결핍이나 영양소 불균형만 아니라면 적게 먹을수록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좋은 걸 못 먹어서 문제가 되기보다 좋지 않은 것을 너무 먹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요즘 간헐적 단식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동물(특히 새가 과식하면 날 수 없다)의 세계에서도 그렇고 현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과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왜 정량급식! 또는 소식을 하기 힘들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의 성향보다 사회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자.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진짜 먹고 죽은 귀신과 먹지 못하고 죽은 귀신을 비교할 수는 없다. 굶어 죽은 귀신이 있다면 이 세상에 대한 원망이 클 것은 뻔하다. 아무래도 굶다가 죽은 귀신보다 먹고 죽은 귀신은 성격이 둥글둥글 원만할 것 같다. 허겁지겁 또는 악착같이 뭔가에 억메이지 않을 것 같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은
잘 먹고 죽은 사람은 양분이 많아 그가 묻힌 무덤에 난 잔디(떼)도 좋다는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듯한 말이다.
대체로 인생의 즐거움, 특히 먹는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자는 뜻으로, 때로는 다이어트나 절제 중에도 "그래도 맛있게 먹고 즐기자"며 자신을 합리화할 때도 사용됩니다.
즉, 결과가 나쁘더라도 즐겁게 먹고 누리면 후회가 적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허망한 인생 좀 즐기다가 가자는 말일 수 있다. 눈앞에 쌓인 문제가 산더미처럼 있더라도 한 잔 마시고 음식을 먹으면서 풀어보자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 처럼 배고픔을 해결하고 나면 좀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고 평정심을 되찾아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어느 나라든지 심각한 기아, 굶주림이 없었던 때가 있었던가. 전쟁 또는 가뭄이나 홍수 추위 때문에 또는 돌림병이나 흉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던 역사가 있다. 뼈까지 달라붙은 피부와 영양결핍으로 앙상한 얼굴은 인간이라기보다 귀신처럼 보였을 것이다. 가끔 TV에서 아프리카 굶주린 어린이의 모습을 보는 느낌과 비슷하거나 더할 것이다. 굶어죽어 귀신이 된다면 확실히 흉칙하고 무서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맞는 말일 것이다. 굶어 죽은 귀신은 흉측한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은 아니잖아요?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이 곱겠지만, 우리는 곧 죽을 사람이거나 귀신이 아니다.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아무거나 함부로 먹지 않아야 한다.
술과 음식을 강권하는 사회
조직에서 일할 때 현장에 가면 의례 '커피 한 잔'을 가져왔었다. 마시고 싶지 않지만, 현장에서 어려운 가운데 가져오는 따듯하고 달콤한 믹스커피는 거절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하루에 3잔 5잔을 마시게 되었다. 저녁때가 되면 부작용이 나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 몸이 부풀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느 날, 커피를 권하는 사람에게 정색하고 물었다. "이거 커피가 좋은 것인가요?"라고. 상대방이 엄청 당황해하고 있어서,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니고,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의향을 먼저 물어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상대방은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가져온 커피인데 내가 불쑥 거부 표시를 했으니 당황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커피값도 아끼고 건강을 위해서 커피 대신 물을 주면 좋겠다는 뜻이라고 위로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음식을)권하는 사람이 늘 주변에 있었다. 술 한잔을 권하는 사람이 많았고, 맛있다면서 먹어라고 권하는 사람부터 음식을 남기면 안 된다고 강권하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정말 싫었다.
술자리에서 "이 술을 나에게 권하는 것은 나를 위한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지만, 진심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곧 알게 된다. 자리를 정리하기 위해서 권하는 사람이 많았고, 상대방을 취하게 만들어 우위에 서려는 의도에서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비즈니스 자리에서는 상대방을 술로 보내야 된다는 게 거의 상식이었다. 대화의 화제를 바꾸려고 술을 권하거나 건배를 제안했다. 하여튼 다양한 사람들이 술과 음식을 권하는데 이건 선의 탈을 쓴 악이라고 생각되었다.
먹고 싶지만, 체면 때문에 또는 성격상 먹고 싶다고 말하기 어려워할 것을 감안하여 음식을 권하는 문화가 있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시절에는 밥 때에 다른 집에 가는 것은 큰 실례였다. 그리고 밥때가 되었는데 손님에게 밥을 대접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큰 결례였다. 굶주렸어도 가져온 음식을 급하게 먹으면 체면을 구기는 것이었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음식을 권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체면 때문에 배고파도 굶주리지 않은 것처럼 살았던 시대는 갔다.
밥 상 하나에 다같이 반찬을 공유하는 문화에서 맛난 반찬을 혼자 독식하면 버릇 없는 행동이다. 우리의 밥상문화 때문에 음식을 권하는 기초가 쌓였을 것이다.
가진 집 권력가 양반가에서는 개인 독상 문화가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식사하더라도 아버지 독상 따로, 아들 독상 따로 2개의 상에서 식사했다. 하층민들은 그럴 수 없었다. 밥은 개인별 밥그릇에 먹지만, 반찬은 모두 공유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고생한 얘기 중 최고는 눈치밥먹던 이야기다. 눈치밥 먹는다는 말은 정말 개인의 독자성을 버리고 인격적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간다는 말이다.
시대는 변해도 문화는 남는다
굶주리던 과거는 갔어도, 그 시대의 문화는 슬픈 상처처럼 남아있다.
내가 과식한 것은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것이다. 사회문화적 관습과 주변 사람들의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 음식 강권 때문이다.
이제는 오로지 나만의 선택, 내 자유의지로 먹고 마시자는 말을 하고 싶다.
내 몸에 무슨 음식을 넣을 것인지는 눈치 보지 말고 내가 결정하겠다. 이것이 소식좌로 가는 발걸음이다.
과거의 낡은 문화임을 인식하면, 이 시대에 맞는 친환경 지속가능 밥상문화를 만들수 있을 것이다.
비용이 조금 더 들어도 건강한 음식을 조금만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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