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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소개
국립박물관은 1973년 개관했다. 치앙마이의 역사와 북부 지방 특유의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태국 북부 지역을 대표하는 박물관 중 하나이다. 란나 타이 양식의 전통 건축법으로 지어졌다. 규모가 비교적 크지는 않지만, 자료들이 충실하게 정리되어 있어 천천히 둘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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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6개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다른 테마로 꾸며졌다.
1관에는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태국 북부 지역의 자연과 생태 환경, 역사, 문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2관에는 란나 왕조의 전성기와 미얀마 점령기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다.
3관에는 미얀마로부터 독립 후 치앙마이 재건 역사가, 4관에는 란나 왕조의 무역, 경제 상이 전시되어 있다.
5관에는 근대로 넘어오며 발전된 경제, 국제, 문화, 교육 방면 사료가, 6관에는 란나 미술 양식을 중심으로 한 태국 예술사를 알아볼 수 있다.
특히 17세기 청동 불상 ‘숩두잉 마라불상’, 1794년에 만들어졌으며 진주로 제작된 ‘부처의 족문’, 역시 란나 왕조 예술품인 ‘프라센 스와에 불상 머리’ 등이 대표적이다. 시대별, 지역별, 분야별 유물들이 다양하게 전시 중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치앙마이 국립박물관 [Chiang Mai National Museum]
박물관 개관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이다.
월요일, 화요일, 공휴일에는 휴관한다.
입장료는 태국 바트화로 100바트(약 3달러)이다.
입장 시 사물 보관함에 휴대품을 보관(무료)한다.
전시실 안에서는 음료 휴대 불가하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셀카는 안된다.
박물관 홈페이지는 태국어와 영어로 서비스된다.(자료와 설명이 많지 않다)
박물관 전시물
란나왕국의 유물로 프라샌스와에 불상머리(Head of Phra Saenswae)가 박물관 입구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수세기 동안 사원에 버려져 있다 발견된 불상머리는 크기가 1.82m로, 유실된 몸까지 합하면 전체 높이가 6m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4~15세기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상은 란나왕국 유물 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힌다. 원래는 방콕국립박물관에 전시됐던 것을 1973년 치앙마이국립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옮겨 왔다.
[한겨레21 보도자료] [인물로 보는 동남아시아]짜끄리 왕조의 왕비 된 란나제국의 공주 다라랏사미, 방콕서도 치앙마이 자존심 지키며 살다. 2023.10.12.
치앙마이 학생들이 금요일에 파신을 입는 까닭은
다라랏사미는 쭐랄롱꼰왕의 총애를 받아 짜끄리 왕조에서 최초로 ‘왕비’(Princess Consort)로 승격된 후궁이 된다. 쭐랄롱꼰왕 서거 이후 치앙마이로 돌아간 다라랏사미가 란나제국의 전통·정체성의 상징이 됐다.
‘별의 후광’이란 이름을 가진 다라랏사미 공주는 제국 간 영토 확장 대결이 가시화되던 1873년 치앙마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란나 왕실의 전통적인 관습과 의식을 란나어로 교육받았다. 당시의 복잡한 정세를 반영하듯 타이어와 북부 지역 언어인 ‘캄무앙’을 배웠고, 심지어 영어도 배웠다. 7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란나제국의 전통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한편, 어릴 때부터 승마를 즐길 정도로 활발한 성격이었다. 그런 딸을 지극히도 아꼈던 인타위차야논왕은 딸이 쭐랄롱꼰왕의 후궁이 되어 방콕 왕궁으로 옮길 때 동행했다.
다라랏사미는 의연하고 꿋꿋하게 란나 생활방식을 지켜나갔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다라랏사미의 긴 생머리와 ‘파신’이라 부르는 치앙마이식 전통치마였다. 당시 방콕 여자는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긴 천을 몸에 두른 뒤 다리 사이로 빼낸 천 끝을 허리로 올려 바지처럼 입었는데, 다라랏사미는 방콕 왕궁에서 지낸 기간 내내 긴 머리를 말아 올려 쪽을 찌고 파신을 입었다.
다라랏사미는 주변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기 소명을 이어갔다. 근대식 병원을 늘리기 위한 기금을 만들고, 농민의 수입을 증대하기 위해 열대과일 용안(longan) 같은 새로운 품종을 소개하고 확산하는 데 기여하는 등 근대화에 힘을 쏟았다. 그러면서도 란나의 고유한 문화를 지켜내려 다양한 노력을 했다. 전통무용과 전통극을 계승하는 교실을 만들어 직접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가 하면, 자기 집에 베틀을 놓고 주민들에게 란나 전통 문양을 짜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지방 상인들이 란나식 직물이나 전통의류를 만들고 팔 수 있도록 지원했다.
한편으로는 란나 역사를 기록했다. 본인이 경험하고 배웠던 란나 왕실의 전통부터 란나제국의 옛 영토를 구석구석 다니며 수집한 고문서와 사료를 바탕으로 했다. 그렇게 치앙마이에서 지낸 19년 동안 다라랏사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란나제국과 치앙마이 왕실의 기억이 역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1933년 치앙마이에서 사망한다.
시암 왕실의 수많은 후궁 중 하나였지만 다라랏사미가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그가 갖은 멸시와 놀림을 받으면서 방콕에서도 그리고 치앙마이에서도 지켜낸 란나 전통 때문이다. 치앙마이가 타이라는 민족국가에 합병되는 시대적 조류는 막지 못했지만 란나제국의 존재를 시암인에게 각인시키고 란나제국 후손의 자부심을 치앙마이 사람들에게 심어줬다. 그런 다라랏사미의 업적을 기리듯 치앙마이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파신’을 입고 등교한다.
위 연대표에서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교의 나라 태국 치앙마이에서 석가모니를 보면 새롭다. 인도에서 석가모니는 서기 2500년 전에 태어나고 살았었다. 그런데, 태국(치앙마이)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언제인가? 수코타이 왕조 시기인 약 1천년 전이었다. 즉 싯달타가 살다가 죽은 지 1천 500년 쯤 지나서 불교가 전해져 불교문화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해졌고, 고려시대에는 민간에서도 불교가 성행하였다.
박물관 관람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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