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한 관계에서 '강압적 통제'가 범죄인 이유

친밀한 관계를 피하는 사람들(원더풀마인드)

어떤 사람들은 상처입을 것을 우려해 미리 마음을 벽으로 감싸고, 누가 친밀감을 가지고 다가오면 도망을 간다.

단골 가게는 있지만, 그 가게 주인과는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는다. 주인이 친밀하게 대하면, 발길을 끊는다.

한 사람이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 관계를 끝내야 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강제로 변화시킬 수 없거나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1. 최근 교제관계 및 가정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결국 피해자 사망, 살인으로 종결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2024년 올해만 해도 강남역 교제살인, 거제 동갑내기 전 연인 폭행 살인, 결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그 모친까지 중상을 입힌 사건, 가정폭력으로 분리조치된 남편이 아내를 찾아가 살해한 사건 등이 크게 보도되었다.

거절살인, 친밀한 관계 폭력 규율에 실패해 온 이유(국회입법조사처)

 

2. 한국여성의 전화는 매해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폭력 피해 현황을 집계하여 발표하고 있다. 한국여성의 전화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 피해자는 최소 138명, 살인미수 피해자는 311명으로 총 449명이 ‘친밀한 관계’ 배우자 및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살아 돌아왔다.

교제폭력발생현황

 

3. 현재 교제폭력 등을 규율할 수 있는 법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형법」 상 규정되어 있는 통상적인 폭행 및 협박죄로 가해자를 신고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미한 사안임을 고려하여 개인 간 해결하도록 하는 반의사불벌 조항이 교제폭력 등에도 적용되는 문제가 있다. 서로 교제하는 사이거나 가족과 같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가해자 처벌 여부를 피해자에게 결정짓도록 하는 처벌불원 허용은 사건 접수에서부터 걸림돌로 작용한다. 보복폭행의 두려움으로 피해자가 진정한 의사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거제살인 사건은 그간 경찰신고가 11회에 이르렀는데, 모두 처벌불원으로 사건이 종결되었다.

 

교제폭력 처분 현황

 

가정폭력 신고 및 처리현황

 

4. 첫째, 친밀한 관계에서의 ‘통제 행위’를 범죄화하는 조항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배우자/파트너 폭력 피해자 중 상당수가 통제피해를 경험하고 있고, 통제피해의 부정적 효과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통제와 강압 행위를 범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교제폭력 사망 사건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극심한 통제 행위에 시달렸고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였음에도 적시에 도움받지 못하고 사망한 이후에야 가해자가 스토킹 혐의로 입건되는 등 피해자 보호에 큰 공백이 있다는 점, 통제 행위가 피해자 살해의 가장 큰 위험요인 중 하나이나 이에 대한 수사기관의 인지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다. 가해자의 통제 행위를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고, 적절한 공권력 개입이 이루어져야 피해자 사망이라는 참극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 항상 직접적인 신체적 구타나 물리적 학대의 유형만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관련 연구들은 그보다 더 위험한 학대를 일명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라 명명하였는데, 상대방의 일상에 대한 간섭과 규제, 모욕주고 비난하기, 행동의 자유를 빼앗고, 가족 및 지인 등으로부터 고립시키는 등의 가해 행위를 일컫는다.

둘째, 친밀한 관계에서의 ‘통제 행위’를 불법화하기 위해서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법적 정의가 필요하다. 친밀성을 어떻게 증명하는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미국 연방법에서는 ‘친밀한 관계’를 배우자, 전(前) 배우자, 자녀를 둔 관계, 동거관계, 동거하였던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교제관계’는 로맨틱 또는 친밀한 본성을 지닌 관계였거나, 친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관계로, 교제 기간 및 본성, 상호 작용의 빈도와 유형에 의해 판단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업무 상 또는 사회교류 맥락에서의 일상적인 친분 관계는 해당되지 않는다

 

셋째, ‘친밀성’이라는 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가해자 처벌을 규율하기 위해서는 ‘반의사 불벌죄’ 배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교제관계가 법률의 적용 대상으로 포괄될지라도 범죄 신고 시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을 결정하게 하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피해자가 처벌불원을 할 우려가 높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교제폭력 및 가정폭력 범죄에 있어 신고건수 대비 사건처리되는 비율이 낮은 것은 가해자 처벌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처벌불원이 원인이다. 피해자를 협박 또는 회유함으로써 손쉽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피해자는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가해자는 수사기관의 개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제21대 국회는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고자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반의사불벌 조항을 전격 폐지하였다는 점을 참조할 수 있다.

 

‘강압적 통제’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을 두고, 혹자는 「형법」에서 규율하는 ‘협박죄’로 상대를 위협하고 두려움에 떨게 한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다. 판례는 “객관적으로 사람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의사실행의 자유를 방해할 정도로 겁을 먹게 할만한 해악의 고지”를 협박죄 성립 요건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일견 이 글에서 다룬 통제 피해 사실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실제 판례에서 인정받은 해악의 고지의 공통점은 예컨대 ‘불을 지르겠다’, ‘죽여 버리겠다’, ‘신체나 사회적 지위에 위해를 가하겠다’,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지게 하겠다’, ‘부실공사를 제보하겠다’ 등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명확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런 식으로 옷 입지 마라’,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 사진 찍어 보내라’, ‘영상 통화로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 달라’, ‘그 모임에 나가지 마라’, ‘누구와 카톡을 주고받았는지 확인해야겠다’, ‘다른 사람과 만나지도 말고 대화도 말라’가 해악의 고지인 협박죄로 인정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사기관이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제대로 간파할 때 비로소 피해자를 적시에 보호할 가능성은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고, 의학적 진단이 가능한 신체적 폭력의 피해를 ‘진짜 피해’로 인식하는 수준이어서 친밀한 관계 폭력 피해자 중 통제 피해자인 경우 경찰신고를 통해 구제받기 어렵고, 자신에게 다가올 치명적 폭력을 예견하는 경우에도 실제 물리적 폭력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는 피해를 호소하기 어렵다.

 

거절살인

 

강압적 통제행위에 대한 범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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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관계에서 강압적 통제, 그리고 인간관계의 본질

전국가정폭력상담소연대와 한국여성의전화는 2020년 9월 17일 한국여성의전화 교육장 ‘깊은’에서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관련법‧제도 개선 토론회 를 개최했다.  그 토론의 주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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