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와 마리 앙투아네트

정치뉴스를 보면, 대통령 비서실장이 잘 나가던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사퇴를 요구했다고 한다. 한동훈은 이것을 거절하였고, 1월 22일 오늘 예정된 민생토론장에 윤대통령이 나오지 않았다. 

뭔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정치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이러한 사건의 발단은 김경율김건희여사를 프랑스 마리앙투아네트에 비유하여 한 말 때문이라고 한다. 

윤대통령의 영부인 김건희는 알겠는데 프랑스 마리 앙투아네트는 왜 갑자기 튀어나와? 누군데?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김경율과 한동훈 비대위원장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지난 17일 명품백을 받은 김건희 여사를 앙투아네트에 빗댄 것이 여권에 격랑을 몰고 왔다. 그는 “프랑스 혁명도 앙투아네트의 사치, 난잡한 사생활이 드러나 감성이 폭발한 것”이라며 “이(명품백 수수) 사건도 국민의 감성을 건드렸다. 바짝 엎드려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김 여사를 비극적 최후를 맞은 앙투아네트에 비유했으니 윤석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이다. 김 위원 발언을 방치하고 공천까지 약속했다는 이유로 최측근인 한동훈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했으니 말이다.


대통령실은 해외 순방 도중 명품 쇼핑, 양평 고속도로 등 김 여사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뭉개왔다. 명품백 수수도 보도된 지 이미 두 달이 지났다. 윤 대통령이 사과했으면 이토록 파장이 커지진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김 여사가 정치공작의 피해자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부풀어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국민과의 공감 능력이 이토록 떨어지는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국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

 

마리 앙투아네트

프랑스 왕국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Josèphe Jeanne)

마리 앙투아네트의 생애와 소문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렇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 관계가 안좋았고, 오스트리아는 프로이센과 적대관계였다. 이러한 적대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서로 적국이었지만 동맹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당시 왕정국가에서 결혼 만큼 신속하고 굳건한 동맹관계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두나라 즉  오스트리아의 황제의 딸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시킨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시 14살 나이로 154센티미터의 작은 키였고 성격은 활달했다. 반면, 루이 16세는 마리보다 1살 많은 15살에 193센티미터의 장신이었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두 사람은 신체와 성격 등 모든 면이 반대였지만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 국민들은 마리 앙투아네트를 적국인 오스트리아 출신이기 때문에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오랫동안 계속되어온 절대왕정의 부패와 모순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과 혁명세력의 등장으로 결국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38세 나이로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관한 거짓과 진실

마리의 허영심과 사치, 그리고 남편 루이 16세의 무능과 부패로 두 사람은 단두대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극도로 이미지가 안 좋았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당시 대부분의 평판은 혁명세력이 혁명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거짓으로 왕과 왕비에 관한 악평을 퍼트렸다고 평가한다. 당시 프랑스는 새로 등장한 부르주아 계급이 사법부와 행정부를 이미 장악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왕정을 무너뜨리는 일만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다만, 루이 16세가 정치감각과 유능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루이 16세는 부르주아 계급이 주축이 된 혁명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정작 같은 시기 서유럽의 다른 절대 군주들은 부르주아 계급을 육성하여 절대 군주권을 강화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최후가 안타깝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사면초가 외통수에 빠져 파멸을 맞이했기 때문이 아니라, 만약 그들에게 조금만 더 통찰력이나 결단력이 있었다면 상황을 극복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음에도 되려 역으로 그 수단에 당하여 파멸했기 때문이다.  (나무위키)

 

마리 앙투아네트의 발언 중 유명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는 그녀가 무개념이었음을 증명하는 발언처럼 여겨졌지만, 정작 그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원래는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의 한 구절인데 마치 왕비가 한 것인 양 악의적으로 선전되었다. 이때문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굶주리는 민중의 아픔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비정하고 철없는 왕비가 되어 있었다. 사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어라"라는 말은 혁명파가 지어낸 이야기이며 민중의 분노를 일으키기 위한 한 수단이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사건? 

프랑스 혁명 발발 4년 전 마리 앙투아네트 이름을 내세운 희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기사건도 그녀에 대한 악의적인 루머를 양산시키는 한 계기가 되었다. 전말은 다음과 같다. 출신이 좀 수상한 라모트 백작부인은 로앙 추기경에게 왕비의 가짜 편지를 전달한다. 장관 자리를 노리고 왕비에게 접근할 기회를 찾고 있던 추기경은,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고 착각한다. 실제로 백작부인은 어느 날 밤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왕비를 닮은 한 창녀를 대역으로 삼아 추기경과 가짜 왕비의 밀회를 주선하기까지 한다. 추기경은 깜빡 속아 넘어가고, 백작부인은 자선사업에 쓴다고 속여 추기경으로부터 여러 차례 돈을 받아 가로채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고 싶다"는 왕비의 가짜 편지를 전달한다. 추기경은 보석상에게 목걸이를 주문하고, 왕비의 친필 사인이라고 믿은 보석상은 추기경에게 목걸이를 보낸다. 만기일까지 돈이 입금되지 않자 보석상은 왕비에게 청구서를 보낸다. 목걸이는 이미 백작부인의 남편이 가로채 영국 런던으로 빼돌려진 뒤였다. 창녀는 왕비의 대역을 자백했고, 가짜 편지를 쓴 라모트 백작부인은 태형에 처해진 후 양쪽 어깨에 ‘도둑(voleuse)’의 첫 글자인 v 낙인이 찍힌 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재판을 통해 진범이 가려졌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무 상관없음이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공식 재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왕비에 대한 나쁜 소문들이 무책임하고 악의적인 신문과 팸플릿들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또 허영심이 가득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으나, 실지 그녀가 재위 중 사용한 예산은 공식적으로 책정된 왕실예산 중 1/10에 불과했다. 다만 시기가 워낙 시기였던지라. 나폴레옹의 전기를 쓴 프랭크 맥클린은 조제핀 드 보아르네가 황후 시절 사치에 쓴 돈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로 있던 기간의 10배가 넘었다고 꽤 신랄하게 촌평했다.

마리는 고작 14세 때 프랑스로 시집 와서 태자비가 되었기 때문에 모국에서 지적인 교육을 받을 시간이 부족했으며 결혼 후 고작 4년 뒤에 시할아버지  루이 15세가 승하해, 10대에 즉위하였기 때문에 왕비로서 성숙할 만한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혁명이 정당화되려면 왕실이 악의 축이 되어야 했기에 남편과 도매금으로 묶여 사악하고 사치스러운 이미지로 알려져있었으나, 실제로는 프랑스 왕비치고는 오히려 매우 검소한 편이었으며 선량하고 동정심 많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사교적이었고 만나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근사근했으며,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편견없이 사람을 대했다. 실제로 루이 16세가 사냥 중에 농민을 다치게 하자, 직접 달려가서 간호해주고 모든 손해를 물어주었고, 고아들을 돌봐주는 등 훈훈한 일화가 전해진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스럽지는 않았지만 전원생활에 환상이 있어, 프티 트리아농 궁에서 오리, 닭, 소를 키우고 세브르산 고급 도자기에  우유를 짜는 등 목가적이고 여유로운 삶을 꿈꾸며 살았다고 한다.

 

당시 육식 위주의 식단, 초콜릿, 튀김 같은 살찌는 음식을 많이 먹고, 향신료 가득한 음식들의 부작용과 위생과 청결 개념이 없던 일상생활의 영향으로 피부가 까맣고 지저분했던 유럽의 귀족들과 달리 채식위주에 살찌는 음식을 멀리했고 자주 목욕을 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깨끗하고 하얀피부를 가져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또한 평생 소식을 했기 때문에 뚱뚱한 다른 왕족과 달리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졌다. 

가슴 사이즈 크기 둘레가 자그마치 109cm 이상이나 되었다고 한다. 단순히 큰 것뿐만 아니라 귀부인끼리 경쟁한 '가장 섹시하고 큰 젖가슴 콘테스트'에서 당당하게 1등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19세기 경부터 프랑스에 유행했던 아래로 동그라면서도 깊이는 얕은 형태의 <쿠페>(Coupe)라는 샴페인 잔은 그녀의 젖가슴 형태를 본 떠서 만든 샴페인잔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쿠페(샴페인 잔)



종합하자면 '베르사유의 장미'에 표현한 미녀까지는 아니었지만 소식하여 몸매도 늘씬한 편이어서, 가슴은 아름답고 매우 큰데 당시 유럽 기준으로 늘씬한 몸매와 백옥에 가까운 피부의 소유자에 패션 센스까지 좋은 당대 아이콘이 되기 충분했다.

 

  마무리

김건희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한 것은 잘못된 것 같다. (김여사가 북한 출신도 아니고, 사기사건의 피해자도 아니라는 점 등 여러가지 면에서)
다행히 오늘 뉴스에 '김 위원은 회의 뒤 ‘김 여사를 마리 앙투아네트에 빗댄 발언도 사과한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라고 답했다'고 한다.

과거의 억측과 거짓 선전과는 달리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렇게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는 왕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김건희를 앙투아네트에 빗댄 발언은 확실히 잘못된 것 같다.
한 사람을 온전히 바라본다는 것이나 누구를 평가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 인 것 같다.

남들 보기에 정말 닮아보이는 형제(자매)도 서로 닮았다고 하면 싫어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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